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면은 1910년 금구군으로 승격했던 유서 깊은 고을로, 김제 15개 읍·면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습니다. 금구향교 대성전 등 국가유산이 여러 건 남아 있습니다.
귀농·귀촌 고려 시 장단점
김제 15개 읍·면 중 인구가 가장 많고(2026년 8월 말 5,950명) 1년 새 20% 늘었으며, 금구초중학교·청운초와 아파트 매물도 있어 정착 여건이 상대적으로 다양합니다.
조사 시점 당근부동산에 면내 단독주택 매물이 없어 전원주택을 찾는다면 인근 면을 함께 봐야 하고, 면내에 고등학교가 없어 면 밖으로 통학해야 합니다.
1년 새 991명(+20.0%) 늘었어요. 사망이 출생보다 26명 많고, 전입이 전출보다 1,018명 많았어요.
- 소멸위험 지역: 소멸위험지수가 0.5 미만이에요(0.23) — 20~39세 여성이 65세 이상 인구의 절반이 안 돼요.
- 인구 증가 중: 2025년 8월보다 991명 늘었어요.
- 고령 비율 도 평균 이상: 65세 이상 비율(35.6%)이 전북 평균(27.5%)보다 높아요.
- 3,099세대 · 세대당 1.92명 · 여성 100명당 남성 106명
- 소멸위험지수 = 20~39세 여성 인구 ÷ 65세 이상 인구. 0.5 미만이면 소멸위험, 0.2 미만이면 고위험으로 봐요.
- 합계는 월말 인구 차이(+991명)와 말소·재등록 등으로 몇 명 차이가 날 수 있어요.
- 김제시 안 다른 읍·면·동153명 (10.3%)
- 전북 안 다른 시·군·구1,163명 (78.2%)
- 수도권77명 (5.2%)
- 그 밖의 시·도94명 (6.3%)
- 전입 전출 · 오른쪽 숫자 = 순이동(전입 − 전출)
- 0~19세, 20~39세, 40~64세, 65세 이상는 들어오는 사람이 더 많아요.
김제시 금구면 특징
옛 금구군 관아 — 금구향교와 사금 산지
금구면은 백제시대 구지지산현, 신라·고려시대 금구현으로 불리다 1910년 금구군으로 승격됐던 유서 깊은 고을로, 국가유산인 금구향교 대성전과 남강정사, 장태수 선생 유물 등이 남아 있습니다. 모악산 자락의 함금석영맥이 풍화돼 한때 사금 산지로 이름났던 곳이기도 합니다. 1914년 김제군에 병합되기 전까지는 10개 면을 관할하는 독립된 군이었습니다.
정착지원·생활인프라 — 금구초중학교·청운초, 호남고속국도
금구면에는 금구초등학교와 금구중학교를 한 교정(금구로 40)에서 통합 운영하는 금구초중학교와 청운초등학교가 있고, 고등학교는 없습니다. 주민등록 인구는 2026년 8월 말 5,950명으로 1년 전(4,957명)보다 20.0% 늘었으며, 김제 15개 읍·면 가운데 가장 많습니다. 호남고속국도가 남북으로 지나 광주·전주 방면 이동이 편리합니다.
정착 비용 감 잡기 — 5천만원대 아파트도
조사 시점 당근부동산에는 금구면 아파트 매물 1건이 79.3㎡ 규모로 5,300만원에 나와 있어, 김제 15개 읍·면 중 드물게 아파트 매물이 확인됩니다. 토지는 5,500만원(2필지 전)부터 2억 8,300만원(계획관리지역)까지 5건이 올라와 있습니다. 단독주택 매물은 조사 시점 없습니다.
지명 유래 — 사금이 나던 하천과 산
금구(金溝)라는 이름은 김제·금산·금천 등 쇠 ‘금(金)’자가 들어간 지명에서 사금이 많이 채취된 것으로 미루어, 하천과 산에서 사금이 많이 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백제시대 구지지산현이던 이곳은 신라·고려시대 금구현, 1910년 금구군으로 승격했다가 1914년 김제군에 병합돼 금구면이 됐습니다. 1995년 김제시·군 통합으로 지금의 금구면이 됐습니다.
교통 — 호남고속국도와 모악산 자락
금구면은 동쪽으로 호남정맥에서 갈라진 모악산(793.5m) 줄기의 산지가 솟아 있고, 서쪽으로는 낮은 구릉지와 두월천 변 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호남고속국도가 남북으로, 전주 방면 도로가 동서로 지나 광주·전주 양방향 접근이 모두 가능합니다. 13개 법정리를 관할하는 김제 15개 읍·면 중 손꼽히는 큰 면입니다.